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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연대/인터뷰

[인터뷰] ①김푸른 '여성, 탈학교청소녀, 알바노동자인를 대변하는 사람은 어디 있는가'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믿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셀럽부터 백수까지' 다양한 유권자들의 선거와 정치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수집해보려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선거'라는 행위가 정치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접속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선거 제도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하고 싶습니다.


〈비례민주주의연대〉에는 운영위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모임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 운영위원이지 매월 정기적으로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선거제도, 정치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고 떠들고 있다. '한국의 선거제도를 바꾸기 위해 뭐라도 해보려고 마음과 시간을 내어 애쓰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설명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선거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어찌어찌 모이게 되다 보니 구성원의 성격도, 정체성도 제각각이다. 정치를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부터 정당 활동가, 마을 활동가, 대학교수, 시민운동 활동가, 반백수, 정치 스타트업 노동자까지.

알음알음 지인의 소개로 혹은 어디에선가 정보를 듣고 자신의 관심사를 쫓아 모인 사람들이 벌써 스무 명 남짓 되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무슨 다단계 피라미드 조직 같다. 그런데 아니라고도 못 하겠다. 활동도 피라미드처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일상을 지키면서 그 안에서 더 많은 사람과 '선거 제도'를 둘러싼 문제와 고민거리를 나누기 위해 열심히 떠들고 있다. '한 명이라도 설득하자'를 모토로 일상과 활동의 줄다리기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들이다. 그중 줄다리기가 왠지 유난히 팽팽해 보이는 이를 먼저 만나봤다. 왜냐하면, 그녀는 무척 바빠 보였기 때문인데 알고 보니 진짜 바빴다.

그녀는 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뿐 아니라 성공회대 녹색당 여성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학내 여성의 날 행사나 달빛 시위 등 페미니즘 이슈와 관련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녀는 짬을 내 아르바이트를 하는 와중에 주말이 되면 촛불을 들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학내 성명서를 작성하고, 그마저도 어려우면 페이스북에라도 목소리를 높여야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여성이자 과거에는 탈학교 청소녀, 현재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인 자신의 고민에 귀를 기울여 주는 정치적 대변인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김푸른 님을 만나봤다.


ⓒ비례민주주의연대


얼굴도 아는 사이끼리 인터뷰하려니까 뻘쭘하다. 그래도 아직 모르는 게 더 많다고 믿고 진행해보겠다. 페미니즘 이슈, 정당, 선거제도 개혁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다양한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되었나.

이렇게 바로 시작하나(웃음). 일단,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하루도 불편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학교생활, 아르바이트, 외부 활동 등을 하면서 항상 불편한데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대학 입학 이후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명확하게 이해되었고, 더 명확하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여성은 술자리에서 긴장해야 하고, 밤길을 걸을 때 두려움에 떨게 되고, 성희롱/성차별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철저히 권력 관계의 문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불평등하고 안전하지 않은 문화는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 문화를 허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조직적으로 구성된다면, 옳지 않은 문화를 누구든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와 선거제도 개혁 활동도 같은 맥락에 있다. 2016년에 녹색당에 가입하고 총선을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게 되었다. 녹색당이라는 정당을 알고는 있었는데 입당을 해서 당비를 내는 것은 고민되더라. 고민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한국 사회는 정당 활동을 하기가 쉬운 사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붙는 꼬리표도 많고 특이하게 여기기도 한다. 현재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아무나 정당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런 맥락에서 녹색당은 여성 당원 비율도 높고 활동에 대한 문턱이 낮았다.

학내에서 녹색당 당원들과 함께 활동하면 이렇게나 기분이 좋거든요 ⓒ비례민주주의연대


정당 활동과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문제의식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었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총선 결과 여소야대로 구성된 20대 국회를 보면서 주변에 들뜬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참담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지'라는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총선 때 녹색당은 5명의 비례대표 후보를 냈는데 정당 득표율은 0.76%에 불과했다.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수치를 보고 쿵 하고 얻어맞은 것 같았다. 녹색당의 탈핵, 기본소득, 동물권 등의 의제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았는데 공감을 못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시기에 스스로 질문을 참 많이 했다. 기득권은 이렇게나 공고한데 대체 언제쯤이면 다양한 목소리가 국회에 들어가고,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언제쯤 정치적 대표자를 가질 수 있게 될까. 구조적인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선거제도라고 생각한다. 현재 선거제도는 정치적 비례성이 존중되지 않는다. 지역 기반의 거대 양당이 독과점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비례성'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어떤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가.

한국 사회는 다양한 선호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회가 여러 무늬와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 색깔이 국회에 골고루 들어가는 것을 '정치적 비례성'이라 이해하고 있다. 사회의 절반이 여성이면 국회에 최소한 절반은 여성이어야 하지 않나. 성 소수자, 장애인은 사회에 존재하는데 이들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은 적거나 없다. 사법부, 언론, 행정, 검찰 등 개혁해야 할 과제가 많은데 그중 많은 부분은 결국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어야 가능한 것들이다. 좋은 국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선거제도가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지역구보다는 비례대표, 즉 정당 투표가 정치적 대표성이 더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정당 내에 농민 출신으로 농민을 대표하는 사람, 여성 단체 활동가, 청년을 대표하는 당사자 등이 비례 대표로 국회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쟁점이 명확한 의제와 관련해서도 그 분야의 전문가, 시민이 원하는 정책에 부합하는 사람이 비례 대표를 통해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현재 우리의 선거는 후보 자체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가 부족하다. 후보의 유명세, 학력이 아닌 어떤 목소리를 내고 살아온 사람인지, 어떤 의제에 관심 있고 누구를 대변할 수 있는지, 대화할 준비는 되어 있는지 등이 중요하게 판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보다 비례대표 의석수가 늘어나고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이 배분되어야 한다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의사가 국가의 대표나 정책에 비례적으로 반영되는 것이다. 시민들이 효과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통로가 있고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짜이는 것. 기득권이 권력을 남용할 수 없도록 부패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 지금의 선거제도가 이런 것들을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각 정치적 경험에서 본인의 의사가 얼마만큼 반영되고 있다고 느끼는가.

청년, 특히 젊은 여성의 말은 나이든 권력 남성보다 묵인되는 경우가 진짜 많다. 내 정체성이 '어린 비혼 여성'으로 여겨지면서 발언권의 무게감이 얕게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학내 토론이나 작은 규모의 회의에서도 그렇고 외부에서 발언 기회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늘 내가 했던 말 자체보다는 '여성', '나이'가 먼저 언급된다. '어린 여성이 기특하네', '나이가 어린 것 치고 대단하네' 이런 식이다. 말의 무게가 다른 쪽으로 쏠리는 느낌이 든다. 과거에는 나의 카리스마 자질 부족을 의심하면서 기가 죽은 적도 많았다. 지금은 가부장적인 것이 권력을 많이 얻는 사회 구조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일상에서도 이런데 정치는 더 심한 것 같다. 대선 주자 혹은 국회에서 청년 정책, 여성 정책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나의 목소리나 의제는 남들이 봤을 때 과격하게 운동을 해야만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그나저나 탈학교 청소녀였나? 전혀 몰랐다. 어떤 고민을 하면서 그만 두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했는데 일단 본인의 의지가 가장 컸다. 부모님은 반대하셨지만 학교와 가치 충돌이 컸다. 남들이 보면 사소한 것일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성적표를 칠판에 붙여 놓거나, 일정 점수를 받지 못하면 체벌한다거나, 선후배 위계질서 등이 견디기 힘들었다. 학교에 남아서 목소리를 내면서 바꿔볼까도 잠시 고민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자퇴를 한 것 자체가 할 수 있었던 하나의 표현이자 운동이었던 것 같다. 자퇴를 선택함으로써 우리 문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거나 학교 선생님도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삼았던 것 같다.


그럼 자퇴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나.

굳이 자퇴라는 결정을 한 것은 아마 스스로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남들이 가는 안정적인 길을 가지 않았을 때 받는 시선을 감내할 수 있는 자신감 같은 것이랄까. 주변에서 보내준 지지도 큰 힘이 되었다. 혼자서 공부하는 기간을 어느 정도 갖다가 대안학교에 들어갔다. 자퇴보다는 오히려 현재 대학으로 편입을 결정할 때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새로운 관계를 다시 맺고 만들어진 곳에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나는 탈학교 청소녀였고 비인가 고등학교인 대안학교를 나와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현재는 검정고시를 봐야 고등 교육이 인정되는 구조다. 대안학교에서 받는 교육 과정은 현재 정부의 인준을 받지 못하고 있다. 탈학교 청소녀/소년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시선도 강하다. 우리 사회의 탈학교에 대한 이미지는 보호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이다. 일반 공교육이 삐뚤어져서 자퇴할 수밖에 없었던 건데. 탈학교 청소녀/소년에 대한 지원, 공교육의 변화를 꾀하는 것도 정치가 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교육 이탈자라 그런지 교육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교육 외에도 관심 있는 사회적 문제가 있나.

요즘에는 대학 구조 개혁 문제에도 관심이 있다. 대학도 등급을 매기니 그 틀에 맞춰서 과정을 바꿔 갈 수밖에 없게 된다. 정해진 기간 내에 빨리 해결해야 하니까 학생들과 소통할 수도 없고. 정치에서 교육이 어떻게 사람을 기르고, 학교의 본질은 무엇인지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럼 최소한 경쟁을 유발하며 줄 세우기를 하는 정책은 탈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친구랑 '만약 우리가 하나의 법을 통과시킬 수 있으면 뭐가 좋을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의 대답이 인상 깊었다. 자기는 '1인 1집'을 정책으로 만들고 싶단다. 한 사람에게 하나의 집을 무조건 주는 정책이란다. 청년들의 주거 불안정, 아르바이트를 통해 충당할 수 없는 어려운 규모의 집세 상황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청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정치에 흥미 있는 사람들은 '청년 세대의 목소리', '청년 정책' 같은 화두를 자주 언급한다. 그러나 정작 정치적으로 동원되거나 정책에 활용되는데 그치는 경우도 많다. 농민, 여성, 청년 당사자가 국회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청년 당사자 국회의원이 늘어나면 청년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나?

나이가 어린 정치인이 늘어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각 분야에서 주거, 노동 등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청년 정치인이 늘어나야 한다. 그런 청년을 길러내는 것이 기성 정치인이 해야 하는 역할이다. '청년'이라는 틀은 굉장히 크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동등한 경쟁자를 대하는 느낌보다는 얼러주면서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시선이 더 강하다. 더불어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훈련도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은 정치인 양성 시스템이 거의 부재하다. 독일 등의 유럽 국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인을 길러내기 위한 훈련을 한다고 한다. 정당의 정치인 양성 교육, 혹은 청년 위원회 등 정당 내 청년 기구를 통해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본다.

청년이 국회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탁금 제도도 개선되어야 한다. 현재 기탁금이 1500만 원인데, 15% 이상의 득표를 얻어야 돌려받을 수 있다. 기성 정당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현재의 구조에서 15% 이상을 올릴 수 있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청년이 정치에 당사자로 진입하기 위한 문턱이 너무나 높은 것도 문제다.


(밑도 끝도 없이) 정치란 뭘까.

정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밥 먹여 주는 문제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는 밥을 먹여주려는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지 않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이미 밥을 잘 먹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놓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변호사, 의사, 교수 출신이고 평균 연령 58세에 남성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 이미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 과연 사람들의 의제에 귀를 기울일까 싶다.

이번 촛불 집회에 정말 많은 사람이 나왔는데 진짜 대통령 하나 바꾸자고 나온 것은 아니라 본다. 세월호 유가족, 학생, 농민 등 각자가 인간답게 살 세상, 자신이 바라는 대한민국, 정치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막는 것을 넘어서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헌법은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온다고 했지만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의민주주의 국가라면 최소한 자신의 정치적 대표는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헌법 1조대로 국가가 운영되게 만들려면 우리의 현실에 대해 계속 질문을 하고 그것에 필요한 제도를 요구해야 한다.

100인 인터뷰의 첫번째 인증샷 ⓒ비례민주주의연대


마지막 질문이다. 현재 자기 삶의 화두나 고민거리가 있다면 무엇인가.

계절을 즐기기에 여유가 너무 없다. 학교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와중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정치 활동에도 발을 걸치고. 의제는 넘쳐나고 활 할 일은 많고 그래서 그냥 마냥 놀러 다니고 싶은 마음도 드는데. 그러기엔 앞으로 잃을 것이 너무 많은 느낌이다. 잘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연대, 활동들이 모여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생각은 그렇게 하는데. 그 과정에서 불안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진행|신나희(비례민주의연대 운영위원)

속기·재구성|복코(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

작성일: 2017.06.28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여성, 탈학교청소녀, 알바노동자인 나를 대변하는 사람은 어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