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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연대/논평, 성명, 기자회견

<성명> 여성할당제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자는 정치인들에게 고함 210711

<성명> 여성할당제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자는 정치인들에게 고함

- 우리는 더 많은 할당제가 필요하다210711

지난 5월,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당시 후보)가 경선 공약으로 ‘할당제 폐지’를 내놓으며 여성 할당제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더해 최근 야권의 대선주자 하태경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은 대통령 공약으로 여성가족부 폐지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이러한 국민의힘 당 대표 및 대선주자들의 발언과 행동들은 선거국면을 맞아 젠더 갈등을 조장하여 20대 남성 지지자들의 표심을 얻어보려는 얄팍한 ‘이대남 정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며, 페미니즘 백래시의 전형이다. 이들에게 있어 이번 선거가 소위 대한민국을 바꾸는 ‘정치’를 하기 위한 선거인지, 그저 대한민국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선거인지 다시금 묻고 싶다.

여성이 과소대표되는 현실, 그리고 여성이 겪는 삶의 문제가 제대로 정치 의제화되지 못하는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국민의 대표자가 해나가야 할 정치는 아닐 것이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혐오를 활용하고 편중된 이익만을 대변한다면 정치인이 아닌 선거꾼이 될 뿐이다.

오히려 더 많은 할당제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집단에 대한, 더욱 많은 할당제가 필요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는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삶과 경험이 반영된 정치적 의제와 문제의식들을 정책과 제도에 담아내는 데 철저히 실패하고 있다. 이는 국회를 비롯한 우리 정치가 오랜 세월 동안 대부분 중년ㆍ남성ㆍ기득권 집단에 속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대변되어 왔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기준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정책을 제안하거나, 구시대적인 발상들을 서슴지 않고 입 밖에 꺼냈다가 곤욕을 치르는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여성 할당제나 여가부 폐지에 대한 이준석 대표 및 야권 대선주자들의 무지에 가까운 발언들은 이러한 우리 정치의 현실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할당제’는 국회를 비롯한 대한민국 정치의 영역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었던 사회구성원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유효한 수단이다. 국민의 모습과 가장 많이 닮아있는 국회, 다양한 계층 및 집단의 경험과 삶이 온전히 정책의제에 반영되는 정치는 말 그대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정치의 영역에 골고루 편입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실현 가능하다.

지난 5월, 남미의 칠레에서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제헌의회 의원 155명을 뽑는 선거가 이루어졌다. 군부독재 시절 만들어진 현행 헌법에 의한 빈부 격차와 불평등에 대한 대국민 시위의 결과였다.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제헌의회는 소수의 엘리트 계층이 아니라 교사, 배우, 주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보통 사람들 155명으로 이뤄졌으며, 선거 과정에서 여성 할당을 두어 세계 최초로 남녀 성비 균형을 5:5로 맞췄다.

칠레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지금 우리 정치에 필요한 것은 국회와 정치에 만연한 과소대표성을 정상화시키는 것이다. 더욱 다양한 당사자성이 정치에 반영되도록 할당제를 강화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가족부는 폐지가 아니라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

선거꾼과 정치인의 기로에 선 이들에게 고한다.

주변 정치인들이 실력을 갖추길 원한다면, 청년ㆍ여성 할당을 받은 정치인들의 능력 부족을 지적하고 실패 사례를 찾는데 골몰하지 말라.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중년ㆍ남성ㆍ기득권 정치인들 위주의 정치가 왜 꾸준히 실패해나가고 있는가를 먼저 고민하라.

국가조직과 부처 운영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싶다면, 산적한 여성 인권 문제와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응하기 위해 묵묵히 역할을 수행해 온 여성가족부를 평가절하 하는 데 골몰하지 말라. 그들에게 필요한 권한과 부족한 자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아낌없는 지원과 도움을 줄 방법이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하라.

무엇보다도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그 역할을 수행할 능력과 경험을 가진 재목인지 성찰하길 바란다. 여성할당제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자는 경솔한 발언보다는 겸손한 자기반성을 통해 스스로에게 부족한 역량과 생소한 영역이 있다면 그 영역에 속한 이들에게 대표성과 역할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성숙한 정치인의 모습을 기대한다.


2021년 7월 11일
비례민주주의연대